감탄고토 (甘呑苦吐)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다" 는 뜻으로 사리의 옳고 그름을 따지지 않고 자기 비위에 맞으면 좋아하고 맞지 않으면 싫어함을 이르는 말이지요 자신이 어려울때는 찾아가 도움을 받고 남이 도움을 청할때는 외면하는 표리부동(表裏不同)한 인간이지요.
와이로 ~ 이제 그 누가 물어보아도시원하게 답을 줄수있어 감사 하네요. 우리가 살아가는 곳곳 에 버젖이 산재해 있는 부정청탁의 실체를 늘 매일 매스컴에서듣다보니 오히려~~그런말 있지요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걸면 귀걸이!!
인생이라~~ 流水不復回(유수불부회) ; 흐르는 물은 다시 돌아오지 않고,行雲難再尋(행운난재심) ; 떠도는 구름은 다시 볼수 없네.老人頭上雪(노인두상설) ; 늙은이의 머리 위에 내린 흰 눈은,春風吹不消(춘풍취불소) ; 봄바람 불어와도 녹지를 않네 !春盡有歸日(춘진유귀일) ; 봄은 오고 가고 하건만,老來無去時(노래무거시) ; 늙음은 한번 오면 갈 줄을 모르네 !春來草自生(춘래초자생) ; 봄이 오면 풀은 절로 나겄만,靑春留不住(청춘유부주) ; 젊음은 붙들어도 달아 나네 ‼ ~ ~花有重開日(화유중개일) ; 꽃은 다시 필날이 있어도,人無更少年(인무갱소년) ; 사람은 다시 소년이 될수 없네 ‼山色古今同(산색고금동) ; 산색은 예나 지금이나 변화지 않으나,人心朝夕變(인심조석변) ; 사람의 마음은 아침 저녁으로 변하네 ~ 뭐~ 한문 실력이나 글의 내용으로 봐선 이름을 알고있지만 기냥 할아버지로 ㅎㅎㅎ
오유지족 (吾唯知足) "口"를 가운데에 두고 좌우상하에 각각 글자가 모여 1개의 글자를 이루고 있다. 너와 내가 만족하니 더 이상 바랄 것이 없다. '나는 오직 족함을 안다.' '나는 현재에 만족할 줄 안다.' 지금 가진 것에 만족하라. 쓸데없는 욕심을 버려라. 나는 오직 만족한 줄을 안다. 모름지기 자신의 분수를 알고 적은 것(小欲)으로 만족할 줄 알아야 모든 사람이 고루 행복해진다는 뜻이다. 모든 것은 마음대로 되는 것도 아니고, 또 억지로 한다고 해서 되는 것이 아니듯, 모든 것이 순리대로 풀려야 하고, 모든 것이 진리대로 나아가는 것이다. 1.오유지족(吾唯知足)의 일화 첫 번째 이야기... 옛날에 한 심부름꾼이 상인과 길을 걷고 있었다. 점심때가 되자 그들은 강가에 앉아 밥을 먹으려 했다. 그때 느닷없이 까마귀떼가 시끄럽게 울어대기 시작했다. 상인은 까마귀 소리가 흉조라며 몹시 언짢아하는데, 심부름꾼은 도리어 씩 웃는 것이었다. 우여곡절 끝에 목적지에 도착한 상인은 심부름꾼에게 삯을 주며 물었다. "아까 까마귀들이 울어댈 때 웃는 이유가 무엇인가?" "까마귀들이 저를 유혹하며 말하기를, 저 상인의 짐 속에 값진 보물이 많으니 그를 죽이고 보물을 가지면 자기들은 시체를 먹겠다고 했습니다." "아니, 그럴 수가? 그런데 자네는 어떤 이유로 까마귀들의 말을 듣지 않았는가?" "나는 전생에 탐욕심을 버리지 못해 그 과보로 현생에 가난한 심부름꾼으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제 또 탐욕심으로 강도질을 한다면 과보를 어찌 감당한단 말입니까? 가난하게 살지언정 무도한 부귀를 누릴 수는 없습니다." 심부름꾼은 조용히 웃으며 길을 떠났다. 그는 오유지족의 참된 의미를 알고 있었던 것이다. 오유지족이란 남과 비교하지 않고 오직 자신에 대 해 만족하라는 가르침이 담긴 말이다. 2.오유지족(吾唯知足)의 일화 두번째 이야기... 1519년 서른네 살 김정국(金正國 :1485~1541)은 기묘사화로 선비들이 죽어나갈 때 동부승지의 자리에서 쫓겨나 시골집으로 낙향을 해 고향에 정자를 짓고 스스로 팔여거사(八餘居士)라 불렀다. 팔여(八餘)란 여덟 가지가 넉넉하다는 뜻인데, 녹봉도 끊긴 그가 “팔여”라고 한 뜻을 몰라 친한 친구가 새 호의 뜻을 묻자, 은퇴한 젊은 정객은 웃으며 말했다. "토란국과 보리밥을 넉넉하게 먹고, 따뜻한 온돌에서 잠을 넉넉하게 자고, 맑은 샘물을 넉넉하게 마시고, 서가에 가득한 책을 넉넉하게 보고, 봄꽃과 가을 달빛을 넉넉하게 감상하고, 새와 솔바람 소리를 넉넉하게 듣고, 눈 속에 핀 매화와 서리 맞은 국화 향기를 넉넉하게 맡는다네. 한 가지 더, 이 일곱 가지를 넉넉하게 즐길 수 있기에 ‘팔여’라 했네." 김정국의 말을 듣고 친구는 팔부족(八不足) 으로 화답했습니다. "세상에는 자네와 반대로 사는 사람도 있더군." 진수성찬을 배불리 먹어도 부족하고, 휘황한 난간에 비단 병풍을 치고 잠을 자면서 부족하고, 이름난 술을 실컷 마시고도 부족하고, 울긋불긋한 그림을 실컷 보고도 부족하고, 아리따운 기생과 실컷 놀고도 부족하고, 희귀한 향을 맡고도 부족하다 여기지. 한 가지 더, 이 일곱 가지 부족한 게 있다고 부족함을 걱정하더군."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모든 것을 버리고 출가해, 6년의 고행 끝에 깨달으신 바를 제자들에게 유언처럼 남기신 말씀. 모든 일에 있어서 만족할 줄 모르는 사람은 자신이 極樂에 있어도 그것을 모른 채 부족하다는 푸념만을 할 것이고, 만족할 줄 아는 사람은 비록 땅바닥에 누워서 잠을 자는 상황이라도 즐겁다는 생각에 늘 행복할 것이라는 뜻입니다.
덕필유린(德必有隣) : 덕이 있으면 반드시 이웃이 있다는 뜻으로, 덕을 갖춘 사람에게는 그를 따르는 이들과 모여드는 이들이 많아서 외롭지 않다는 의미이다. 가훈(家訓)으로 선정된 문구중에서 몇번째 안에 드는 좋은 문구이다. 이는 공자께서 하신 말씀으로, “덕은 외롭지 않으니 반드시 이웃이 있기 마련이다 ”(子曰, “德不孤, 必有隣.”) 덕불고 필유린 이라고 한 말이 줄여서 유래된 것이다. 며칠전, 국문학 박사이자 저술가로 유명한 “모 연세대교수”가 세상을 떠났다는 기사를 접하였다. 노령(老齡)이 아닐텐데 싶었더니 66세란다. 그래도 그렇지 좀 일찍이다 했더니 스스로 목메 숨졌다 하여 그 연유가 궁금해서 꼼꼼히 기사를 들여다 보게 되었다. 나는 그의 저서를 몇권 읽은적이 있었는데, 야한소설이라 슬금슬금 흥미가 있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천재의 길을 걸어온 문인이었기에 그 표현력(필력)이 뛰어난 문체일것 같아서 관심을 가지고 읽어 보았는데 역시, 많은 이들의 이유있는 인기와 유명세를 확인할수 있었던 실력파 학자로 기억 된다. 그는 연세대에서 줄곳 수석의 자리를 차지하며 최연소 교수, 문학박사가 되었는데, 너무 똑똑하여 남의 눈에 튀는 일이 많았을 뿐만 아니라, 성(性)에 대해서 자유로운 표현이 도를 넘었다는 혐의를 받는등, 시기와 지탄의 화살이 집중적으로 쏟아져 결국은 옥고를 치르고 풍파가 많은 생애를 살아온 불운남 이었으니 그를 통하여 세상은 좀 어리숙하게 살아야 탈이 없다는 예를 보여준 것과 같다. 그런데, 유명인치고 그의 빈소는 찾는 조문객이 적어서 분위기가 매우 쓸쓸했다고 하니 웬지 “덕필유린(德必有隣)” 이라는 고사성어가 떠오른다. 베스트셀러 작가요 시인인 만큼, 팬들이 많았을 터, 실력이 뛰어난 교수였기에 제자도 많이 배양 했을터, 선,후배 학우들, 교내의 동료들….. 이웃이 많았을텐데…..그의 마지막 길에 찾는이가 별로 없다하니 생애에 덕업(德業)을 쌓지 못한 결과 였을까?... 아니면 뛰어난 인물이었기에 세상의 매정함이 등을 돌린것일까? 어느 서울대 명예교수가 한 말이다. 훌륭하고 뛰어난 장수나 지도자를 평할 때, 보통 세 가지 유형으로 나뉜다. 하나는 용맹함이 탁월한 용장(勇將) 또는 맹장(猛將)이고, 또 하나는 지식과 지략이 풍부한 지장(知將) 또는 지장(智將)이며, 다른 하나는 덕망과 인자함을 갖춘 덕장(德將) 또는 인장(仁將)이다. 이 세 유형을 비교함에 있어 용장 보다는 지장이 앞서고, 지장 보다는 덕장이 더 앞선다고 한다. 용맹함과 지혜로움 보다 덕스러움이 가장 훌륭한 장수나 지도자의 품격이라는 말이다. 덕필유린(德必有隣), 곧 덕인(德人)의 주변에는 언제나 많은 사람이 모인다고 한다. 그것은 덕인의 성품이 착하고 온순하여 접근하기 쉽고 남의 마음을 편하게 할 뿐만 아니라 그의 언행으로부터 배울 바가 많으며 때로는 어려운 일을 해결해 주기도 하기 때문이다. 즉 덕인은 득(得)을 준다는 것이다. 그런데 덕인이 그 후덕함을 지속적으로 유지하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의 여유를 갖고 있어야 한다는 제약이 따른다. 재산상의 여유와, 권한상의 여유와, 시간상의 여유가 그것이다. 아무리 좋은 덕을 갖고 있더라도 너무 가난하여 생계가 어렵거나 전혀 힘이 없어 아무 해결도 할 수 없거나 자기 일에 바빠 남을 대할 시간적 여유가 전혀 없을 때는 덕을 계속하여 행사하기가 어렵게 된다. 그래서 여유로운 삶을 통하여 후덕한 사람이 되면 외롭지 않게 많은 사람들과 정답게 살수 있겠는데 …………………….. ㅠㅠ 기도와 노력으로 이룬 안정된 삶의 기반위에 덕필유린(德必有隣)의 행함이 성공한 인생 아니겠는가.
마가오상(馬家五常) : 마씨 가문의 다섯 형제(兄弟)가 상(常)이라는 이름을 썼다는 뜻으로, 다섯 형제 모두 학문과 재주가 뛰어난데서 연유(緣由)한 말로, 집안에 명망(名望) 높은 형제들이 있는 경우에 마가오상(馬家五常)이라고 일컷는다. 이 말은 중국의 삼국시대 촉나라 유비(劉備)의 신하 마량(馬良)형제에 대한 이야기이며, 이를 한브네트에 泣斬馬謖(읍참마속)이란 고사로 지난 12월 3일자로 게시한적이 있었다. 여기에 등장하는 마속(馬謖)은 뛰어난 젊은장수였지만 전투에 임하여 제갈량의 지시를 어기면서 자신의 계략으로 전투를 벌이다가 패하게 되자 제갈량은 상관의 명령을 어긴 죄로 그를 참하게 되는데, 그의 뛰어난 재주를 안타까워하면서 참하였다고 적었었다. 즉, 제갈량(諸葛亮)의 본 마음은 그의 죽음을 원치 않았으나, 군률의 엄격함 때문에 울면서 그의 목을 베었다 하여, 여기서 “읍참마속”이란 말이 유래된 것으로, 마음은 원하지 않으나 피할수 없는 여건 때문에 할수 없이 단행한 경우를 말할때 지금도 쓰이는 고사성어인 것이다. 목이 베인 마속(馬謖)은 제갈량의 둘도 없는 절친인 마량(馬良)의 막내동생으로서, 모든 사람들로 부터 칭송이 자자한 젊은 청년이었는데, 당시에 그의 형제 모두가 훌륭하였으며 다섯명 모두가 호(號)에다가 상(常)자를 썼기 때문에 “오상(五常)” 이라고 하였다. 큰 형인 마량은 문무(文武)를 겸비한 자로서, 말 한마디로 북쪽 변방의 흉포한 오랑캐의 한 무리를 모두 부하로 삼는데 성공했을 정도로 덕성(德性)과 지모(智謀)가 뛰어난 인물 이었다. 이렇게 훌륭한 마량은 눈썹이 희었기에 뭇사람들이 그를 “마씨오상 백미최량(馬氏五常 白眉最良: 마씨의 다섯 형제들 중에서 흰 눈썹이 제일 훌륭하다)라고 하였으니, 형제중에서도 마량이 가장 훌륭하다고 평하는 것이며, 이말은 지금에 이르러서도 가장 뛰어난 사람이나 작품, 물건을 일컬어 “백미(白眉)를 장식” 했다 라고 쓰는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량(良)”자가 어질다는 뜻임에도 마량(馬良)의 량자를 따서 “훌륭할” 량(良)으로 변칙 사용하였으니 “最良(최량)”이라함은 “가장 훌륭하다”로 인식하게 된 것이다. 유비의 뛰어난 참모이자 제갈량의 문경지교(刎頸之交: 생사를 같이 할 수 있는 아주 가까운 친구 )인 마량(馬良)의 다섯 형제. 그 모두가 학문과 무예, 덕망이 높아서 후세에 이르기 까지 기리는 “마가오상(馬家五常)”이 된 성어는 온 세상에 본이 되는 형제의 표상인 것이다.
대성지행(戴星之行) : 별을 이고 가는 길이라는 뜻으로, 객지(客地)에서 부모(父母)의 부음(訃音)을 듣고 밤을 새워 집으로 돌아가는 것을 이르는 말 이역만리 타지에서, 부모의 부고(訃告)를 듣고 고향집을 가려고 급히 비행기를 타는 자식의 심정은, 부모곁에 함께 살아주지 못한 회한(悔恨)과 임종을 지켜보지 못한 안타까움에 그 설움이 클 터인데, 오늘의 고사성어에서 이르는 대성지행(戴星之行)은 이처럼 객지에서 부모가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듣고서 밤새도록 걸음을 재촉하여 고향집으로 돌아가는 정황을 표현한 것이니 그 긴 밤길에 마음이 얼마나 괴롭고 한탄스러움이 컷을까…. 예나 지금이나 같은 심정이니 인생사란….. 해외교포들은 고국을 떠난 이민자의 신분으로 낯선 외국땅에 정착하여 여생을 살아가지만, 수십년을 살아가면서도 마음만은 늘 객지의 삶인것 처럼 떠나온 고향땅에 대한 향수에 젖을 때가 많다. 물론, 한국에서 살때의 과거가 지긋지긋하여 도피하듯 이민을 떠나온 경우라면 예외가 될수도 있겠으나, 두고 온 고향에 아직도 부모,형제, 친척, 그리고 친구들이 살아가는 한, 마음 한가운데에 자리잡고 있는 고향의 끈은 그렇게 그리워하며 한 평생을 이어갈 것이다. 최초에 어느 한가정이 이민길에 오르고 나면 조금씩 자리잡아 가면서 고향에 두고 온 부모,형제들을 초청하는 경우가 많은데 우선, 방문초청으로 다녀간 부모들은 낯선 이국땅에서 언어, 문화에 고립된 환경임을 실감하고 고향에 돌아가 정착하기를 희망하니, 측근에서 살필수 없는 부모의 동향에 걱정하는 자식들의 시름이 많은 것 같다. 부모님이 고향땅에서 소일삼아 조금씩 밭농사를 지으며, 때로는 장터에, 마을회관에 다니는 모습은 육신으로나 마음으로나 건강을 유지하는 비결이 될수도 있으니 자식으로서 봉양할수 없는 처지가 되는 것이고, 그렇게 전화로만 안부를 물으며 머나먼 삶을 살아가는 것인데, 아무래도 부모가 연로하시다 보니 아버지가 덜컥, 돌아가시기라도 하면 홀로 남겨진 어머니에 대한 걱정이 이만저만 하지 않을 것이다. 그래도 어머니는 아버지와 함께 살아온 정든 집을 떠나지 않으려 하시니 어쩌겠는가. 어느 이민자의 이야기다. 어머님이 이틀째 전화를 받지 않자 먼 친척뻘되는 사람에게 부탁해서 집에 가보도록 했다. 그랬더니 어머니가 거동도 못하시고 방안에 누워 꼼짝을 못하고 계시더란다. 그 친척 덕분에 어머니를 급히 병원응급실로 모실수 있었다는데, 이런 경우는 그나마 다행인 경우다. 주변에 아는 사람이나 친척이 있으면 그쪽으로 연락을 해서 상황을 파악하면 되겠지만 그렇지 못할 때 보통 답답한게 아니다. 이럴 때는 군청이나 면사무소에 전화해서 사정을 얘기하고 무슨 연유인지 확인하면 도움을 받을수 있다. 전화를 받으면 구급차를 집으로 보내줄 수 있고, 사회복지사들이 집으로 직접 찾아가 안부를 확인해서 문자로 그 결과를 알려줄 수 있다. 또 장기적인 경우라면 ‘36시간 방문서비스’를 이용하면 좋은데 월 3천원~7천원의 비용을 부담하면 담당자가 정해지고 매주 2~3회 정기적인 방문을 통해 안부를 체크하도록 되어있다. 더구나 기초생활수급자나 차상위계층은 무료이며, 치매환자나 거동이 불편한 사람에게는 우선적으로 서비스를 제공한다고 하니 어떤가? 한국의 복지정책이 이렇게 높아졌나 놀라게 된다. 아무리 복지가 좋아졌다한들, 부모 돌아가시고 나면 아무 의미 없는 것이니 살아실제 한번이라도 더 찾아 뵙고 효도 하지 않으면 “불효부모, 사후회(不孝父母, 死後悔 : 부모에게 불효, 돌아가신후 후회함)”라 하지 않던가. 때늦어 대성지행(戴星之行) 하며 한탄한들 무엇하리.
노당익장(老當益壯) : 늙었어도 더욱 기운이 왕성하다는 뜻. 비록 늙었을지라도 의욕이나 기력은 젊은이 못지않게 강하고 씩씩하다’는 의미로, 줄여서 노익장이라고 한다. 중국역사 후한서(後漢書) 마수전(馬授傳)에 나온 말이다. 서한(西漢)말, 부풍군(扶風郡)에 마원(馬援)이란 사람이 있었는데 어려서부터 학문과 예절을 잘 익히고, 무예도 정통하여서 사람됨됨이의 그릇이 컸기에 주위의 촉망을 받이온 인물이었다. 마원은 젊어서 감찰관이란 벼슬로 시골 관리가 되었는데, 고을의 태수(太守)가 명을 내려 많은 죄수들을 호송하는 임무를 수행하던 중, 죄수들이 고통을 못이겨 괴로워하는 것을 보고는 동정심이 발동하여 모든 죄수들을 임의로 풀어주면서 각기 제 살길을 가도록 도망치게 하고 자신은 감숙성(甘肅省)의 북방으로 도망을 쳤다. 마원은 북방에 숨어서 정착하였는데 여기서 소, 말, 양 등 가축을 기르며 부지런히 일하였더니 수년만에 가축이 수천마리로 늘어나 부자(富子)가 되었다. 그는 어려운 이웃을 위해 돕는데 마음과 재물을 아끼지 않았으나 정작 자신은 검소한 생활을 하며 지냈다. . 오랜 세월이 흐르며 마원의 인물됨이 소문으로 알려지게 되자 후한(後漢)의 광무제(光武帝)가 그를 발탁하여 복파장군(僕波將軍)이라는 벼슬을 내리니 그는 북부를 정벌하면서 전쟁에서 혁혁한 공을 세우게 된다. 그러나, 동정호(洞庭湖)일대의 만족(蠻族오랑캐)이 반란을 일으키자 광무제가 다른 장군으로 하여금 급히 군대를 출병시켰으나 전멸하고 만다. 패전의 소식을 듣은 마윈은 광무제를 알현하여 자신이 직접 군사를 거느리고 출정할 것을 건의하였다. 이때 마원의 나이가 62세 노령인줄 아는 광무제가 말하기를 “그대를 믿지 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거기까지 가기엔 너무 먼 거리요 그대는 이미 너무 늙었소” 하고 만류를 했다. 그러자 마원이 기개도 늠름히 말하기를 “대장부위자(大丈夫爲者) 궁당익견(窮當益堅) 이니 노당익장老當益壯) 이옵니다” 라고 하니 이를 풀이하면, “무릇 대장부가 뜻을 품었으면 어려울수록 의지가 굳세어야 하며, 늙을수록 의욕과 기력이 왕성해야 한다”는 뜻에서 “노당익장老當益壯)” 이라는 고사성어가 유래하게 되었다. 이어서 광무제는 “그대가 훌륭한 장수인 것은 나도 잘 아오, 허나 세월은 이길 수 없는 것 아니오”라고 하자 마원은 “신의 나이 예순 둘이지만 아직 늙다고 볼 수 없습니다” 하고는 갑옷을 챙겨 입고 말위로 훌쩍 뛰어 오르며 건재를 과시했다. 광무제는 더이상 마윈의 뜻을 막지 못하고 반란군 진압을 위하여 전쟁터로 그를 보내게 되었는데 역시나 마윈장군은 오랑캐를 완전히 섬멸하여 큰 공을 세우게 되었다. 이에 광무제는 마원이 좋아한 귀절을 외치니 “이 노인이야 말로 노당익장이로군!!!!” 노후(老後)는 싫든 좋든 누구도 피할 수 없는 생(生)의 한 과정이다. 그러므로 다른 모든 세대들은 노인을 대할 때 어느 한 세대를 위한 특별한 배려가 아닌, 자신에게도 머지않아 다가 올 세대임을 인식하여 거시적인 안목으로 어른들이 당당한 노당익장으로 살아갈수 있는 섬김과 배려의 풍토를 만들어 가야할 것이다. 그리고, 노경에 들어선 세대들은 마윈의 의기를 자신의 삶에 적용하여 “대장부가 뜻을 품었으면 어려울수록 굳세어야 하고, 늙을수록 건강해야 한다”는 신념을 가지고 여생을 살아가야 할것이다. 노익장(老益壯)을 과시하며 살아가는 삶, 바로 그것이다.
출고반면 (出告反面) : 나갈 때는 아뢰고 돌아와서 대면한다는 뜻으로, 자식된 도리로 외출과 귀가 때에 부모님께 아뢰고 인사를 드린다는 의미이다. 어느 문예 월간지에 실린 내용 가운데 “고교생을 위한 필수 고사성어”란 기사가 눈에 들어오는데, 특히, 이 가운데 “출고반면 (出告反面)”이 들어 있슴은 학문과 예절을 동시에 가르치는 성어라서 자라나는 청소년들이 알아야할 “필수사항” 속에 나열한것이 흐믓하게 생각되었기 때문이다. 이 말은 부모님께 대하는 도리를 가르치는 성어일 뿐만 아니라, 더 나아 가서 웃 어른에게 대하는 예절을 줄여서 말하는 성어이다. 출고반면 (出告反面)의 유래가 되는 소학(小學)에서, 자식이 외출시에 부모에 대한 태도는 이렇게 이른다. 출필고 하고, 곡반필면 하며 소유를 필유상 하고, 소습을 필유업 하며 항언에 불칭노니라. (出必告 谷反必面 所遊 必有常 所習 必有業 恒言 不稱老) 이는 곧, “나갈때는 반드시 부모님께 아뢰고 떠나며, 돌아 왔을땐 반드시 얼굴을 대하며, 있는 곳은 항상 같은 곳에 있도록 하고 익힐때는 반드시 수업을 하며, 보통때 자신이 늙었다고 말하지 말라”는 뜻이다. 나갈때 아뢰는 이유는 부모가 찾을까 염려되여 미리 알리는 것이며, 돌아 옴에 있어서 대면하는 것은, 부모가 안심하도록 해드리고 안색을 살펴서 늘 챙겨드리라는 섬김의 도리를 가르치는 것이다. “孝(효)”라는 글자가 무엇을 뜻하는가? “지팡이를 짚은 노인을 아들이 업고 간다”는 모양으로 자식이 부모를 봉양하는 의미를 나타낸다. 그러나 요즈음 효도라는 것은 물질적으로만 겉치레할뿐, 존경의 마음을 가지고 정성으로 봉양하는 옛 풍습과는 거리가 너무나 멀리 벌어지고 있다는 생각에 씁쓸한 얘기 한토막을 꺼내 본다. 일명 부모, 자식간에 “효도계약서”라는 서류를 변호사의 입회 아래 작성하는 일이 요즘 한국사회에서 빈번 하다고 알려지고 있다. 이 서류는 부모가 젊은 자식에게 집을 사주거나 재산을 물려주는 대신, 자식은 부모에게 봉양의 의무를 다하겠다고 약속하는 내용을 담은 각서(覺書)를 말한다. 민법상 자식에게 조건없이 증여한 재산은 특별한 사정이 없는한 돌려받기 어렵기 때문에 섣불리 자녀에게 재산을 물려줬다가 나중에 홀대받거나 버림받을 것을 우려한 부모들이 안전장치로 효도계약서 쓰기에 나선 것이다 자산 관리 상담을 해주는 시중은행 지점에 효도계약서 작성 방법을 문의하는 사람도 부쩍 늘었고, 중산층이 주요 고객인 지점에서 변호사나 자산관리 전문가와 효도계약서 작성을 상담해 주는 은행도 생겨났는데, 효도계약서의 기본 골격은 '부모가 자식에게 재산을 물려주는 대신 자식은 부모에게 효도한다'는 것이다. 부모가 자식에게 돈을 주고 강제로 효도받겠다는 행위라서 기가 막히는 현실이라 아니할수 없다. 자식의 장래를 위하여 모든 것을 쏟아 주었더니 나중에 부모를 홀대하고 버리는 가정이 너무나 많은 요즘의 사회에서 이렇게 라도 안전장치를 마련하는 부자간의 심경이 오죽 황폐할까 싶어서 참교육이 절실히 요구되며, 오늘의 고사성어인 “출고반면 (出告反面)”이 자라나는 신세대에게 배움이요 필수 교훈이 되기를 기대하게 된다.
자위부은(子爲父隱) : 자식은 아비를 위(爲)해 아비의 나쁜 것을 숨긴다는 뜻으로, 부자지간(父子之間)의 천륜을 이르는 말이다. 논어의 자로편(子路篇)에 나오는 이야기 중에 섭공(葉公)에 관한 이야기가 나온다. 궁(躬)이라는 사람은 성품이 매우 곧고 정직하여 주위사람들이 그를 가리켜 직궁(直躬)이라 하였으니 이를 풀이하면, 성품이 곧이 곧대로인 자(者), 아주 꼿꼿한자를 의미한다. 하루는 직궁(直躬)이 제 아비가 이웃에서 양(羊) 한마리를 훔쳐 나오는 것을 보고, 관청에 고발 하였다. 범죄를 목도하면 가차없이 고(告)하는 것이 자신의 정직한 신념임을 굳건히 믿었기에 아비를 은닉하지 않고 즉시, 고발함과 동시에 자청해서 증인(證人)으로 까지 나섰던 것이다. 이러한 사연이 알려지면서, 섭(葉)고을의 섭공(葉公)이 노(魯)고을에 계신 공자(公子)께 여짜옵기를….. “우리 고을에 성품이 매우 곧은 자가 있어 제 아비가 양을 훔쳤다고 관아(官牙)에 고하였다 하옵니다” 하니 공자께서 말씀하시되, “우리 고을에 성품이 곧은 자는 이와 달라서, 아비는 자식을 위해 숩기고 자식은 아비를 위하여 숨기니 정직(正直)이란 그런 가운데서 나오는것이오” 라고 하시니, 이것이 무엇을 뜻하는 말인가? 부자지간은 천륜(天倫)의 관계이므로, 지나친 정직함은 오히려 인정(人情)과 천의(天意)를 벗어나게 된다. 그러므로 어떤 이유를 든다해도 천륜을 거스르는 것은 어리석음을 뜻하는 것으로 널리 회자(膾炙) 되고 있으며, 장자(莊子), 한비자(韓非子), 등에도 인용이 되어서 어리석고 융통성이 없다고 지적한다. 우리나라는 이러한 유교적 가르침의 영향을 깊히 받아서 인지, 한국을 비롯하여 여러 나라들이 아버지의 범죄에 대하여 자식이 숨겨주었을 때 처벌하지 않으며, 또한, 가족 내지 친족이 범죄를 저질렀을 때 범인을 숨겨주는 행위에 대해서도 처벌하지 않는다. 그뿐만 아니라 범죄자의 도피를 도와 주거나 그 증거를 인멸한 죄에 대해서도 처벌하지 않는다. 라고 형법 제151조, 제155조에서 “범인은닉과 친족간의 특례” 로 규정하고 있다. 브라질은 어떤지 모르겠으나, 미국의 경우에는 위법(미 형법 제 32조)이라고 규정해 놓고, 실제로는 가족간의 인지상정(人之常情)을 잘 알고 있는 재판부에서 기각이 되는 일이 더 많다고 한다. 자식의 잘못은 부모가 훈육으로 바로 잡아주는 것이 도리이겠지만, 부모의 잘못은 자식이 덮어주는게 법보다 우선되는 인륜(人倫)이요 더 위로는 천륜(天倫)이라 하겠다. 성경에 나오는 “노아” 의 벌거벗은 이야기(창 9:20~27)에서 노아가 저지른 만취의 잘못과 벌거벗은 실수(망령된 행실)이 있었다 해도, 그 자식은 아비의 허물을 덮어주는 것이 하늘의 뜻이요 도리가 아닌가. 그래서 오늘의 고사 “자위부은(子爲父隱)”은 부모의 허물 조차도 덮어드려야 하는 것이 자식된 도리라는 점을 일깨워주는 교훈이라 하겠다.
![]() |
Um pouquinho de amor gera esperanças e por vezes, faz até milagres.
O site trata colaborar com um mundo mais acolhedor.
|